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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題名): 진실을 삼킨 사람들 (Those Who Swallowed the Truth)

 

등장인물

  • 차민준 (60대 초반): 한국 상담복지학계의 거두. 명망 높은 영재대학교 상담복지학과 원로 교수. 젠틀한 외관 속에 뒤틀린 욕망을 숨기고 있다.

  • 윤서희 (50대 후반): 차민준의 아내. 평생을 남편의 그림자로 살아왔으나,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배신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 한유나 (30대 초반): 미국 유학생 출신의 야심가. 차민준을 동아줄 삼아 학계에 뿌리내리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 김진우 (50대 초반): 대한교류상담학회 이사.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는 인물.

  • 오상기 (50대 중반): 신임 대한교류상담학회 회장. 차민준의 대학 직속 후배로,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1막: 안갯속의 도시

 

미국 워싱턴주의 수도 워싱톤 근처의 한적한 시골도시 에디슨의 한적한 교외. 안식년을 맞아 이곳에 머무는 차민준 교수는 작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마음의 치유'를 주제로 교양 강좌를 열고 있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현지 교민들이었다. 그 속에서 유독 빛나는 눈으로 그의 모든 말을 흡수하는 젊은 여인, 한유나가 있었다.

"교수님의 이론은 마치 안갯속에서 등대를 만난 것 같아요."

강의가 끝나고 이어진 티타임. 유나의 찬사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깊은 매혹을 담고 있었다. 신학대학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의 지적인 목마름과 야망은, 평생 학자로서 존경받아온 차민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남성성을 자극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학문적 교류라는 이름 아래 깊어졌다. 안개 자욱한 스탠리 파크를 함께 거닐고, 잉글리시 베이의 석양을 바라보며 상담학의 미래를 논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미래를 약속하는 밀어로 변해갔다. 차민준은 아내 윤서희와의 오랜 권태를 '이해받지 못하는 학자의 고독'으로 포장했고, 유나는 그의 권위와 지성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막: 귀환과 그림자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 차민준은 예전과 같았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아내 서희는 남편의 서재에서 낯선 여성의 이름이 적힌 책과 메모들을 발견했다. 밤늦게 걸려 오는 의문의 전화에 남편은 "학회 일"이라며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서희의 불안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녀의 질문이 날카로워질수록, 심리학의 대가인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교묘한 심리적 가해자로 몰아세웠다.

"당신, 요즘 너무 예민해. 일종의 피해의식이야. 내가 상담가 한번 소개해 줄까?"

그사이 한유나가 한국에 들어왔다. 차민준의 추천으로 명문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그녀는, 그의 날개 아래 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대한교류상담학회 회장이던 차민준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유나를 위한 길을 닦기 시작했다. 정식 절차를 무시한 채, 그녀를 학회의 핵심 분과인 '아동상담 전문가'로 위촉했다. 몇몇 이사들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차민준의 권위 앞에 그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그중에서도 김진우 이사만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다.

"회장님, 한유나 선생은 경력과 자격 요건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건 학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차민준은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김 이사, 너무 원칙만 따지는군. 저런 인재는 우리가 키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3막: 법정, 보이지 않는 감옥

 

결국 서희의 의심은 부부 사이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은 차민준이었다. 그는 아내를 '망상과 의부증에 시달리는 환자'로 몰아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은 서희에게 너무나 가혹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심증만 있을 뿐,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반면 차민준은 동료 교수와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아내의 '비이성적인 집착'에 고통받았는지를 호소했다. 그는 법정에서조차 저명한 심리학자였고, 서희는 그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내'일 뿐이었다.

"판사님, 제 아내는 제가 만든 허상과 싸우고 있습니다. 평생을 바친 학자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차민준의 눈물 섞인 호소에 배심원들은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결국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서희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는 '의부증 환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수십 년의 결혼 생활을 강제로 마감당했다.

이혼 판결 잉크가 마르기도 전, 차민준은 한유나와 재혼했다. 그들의 결혼은 학계의 추문이 되었지만, 차민준의 권력과 그에게 빚을 진 이들이 만든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조용히 덮였다.

 

4-1막: 침묵의 대가

 

차민준이 명예교수로 물러나고, 그의 직속 후배인 오상기가 학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진우 이사는 포기하지 않고 한유나의 불법적인 자격 취득 문제를 다시 공론화했다. 그는 모든 이사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학회 윤리위원회의 정식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었다.

오상기 회장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안건은 '학회 내부의 분란을 조장하고 명예를 실추시킨 김진우 이사에 대한 징계'였다.

"김진우 이사님은 검증되지 않은 의혹으로 학회의 화합을 깨고, 존경받는 원로 교수님의 명예에 흠집을 냈습니다. 이는 학회 정관에 위배되는 명백한 해당 행위입니다."

김진우는 홀로 항변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이 화합입니까?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괴사할 겁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이사회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김진우 이사, 자격 정지 1년 및 전체 이메일 발송 금지'를 의결했다.

 

4-2막: 균열

 

차가운 징계 통보서를 손에 쥔 김진우는 텅 빈 자신의 연구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대학의 상아탑은 견고해 보였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가장 단단해 보이는 곳에 가장 깊은 균열이 숨어있다는 것을.

그 균열은 한 여인의 삶을 통째로 무너뜨렸고, 학문의 전당을 욕망의 소굴로 만들었으며, 이제 정의를 외친 자신의 목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세상은 침묵했고, 진실은 힘 있는 자들의 이야기 뒤편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이 균열은 언젠가 저 거대한 탑을 무너뜨릴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게시 문구: “이 글은 소설입니다. 실존 인물·기관과 무관합니다. 공익적 질문을 위해 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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